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관련 주요 이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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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팀 서희원 팀장, 김은영 연구원
수용성과 분권 기반의 기후적응형 전력망 재설계 방안
1. 전력망을 흔드는 폭염의 이중 위협
2025년 8월, 대한민국은 연일 35도를 웃도는 기록적인 폭염에 직면한 가운데 서울 지하철 일부 역사는 최고 40도에 육박하는 '찜통' 상태다. 냉방 수요는 급증하고 병원·지하철·노인요양시설·데이터센터 등 전력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생존 인프라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 전반의 전력화·디지털화 가속화 속 폭염은 기후위기이자 동시에 전력망 위기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단순 날씨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를 압박하는 복합 재난임을 경고한다. 2025년 서울 기후·에너지 회의(CESS 2025)에서 이재걸 한국전력 전력연구원 팀장은 “우리나라에서 전력망에 가장 치명적인 기후 재난은 산불”이라며, 폭염·가뭄·강풍 등 복합 기상현상이 송전선과 변전소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25년 3월 발생한 영남권 산불로 16개 송전선이 정지되고 주요 변전소가 손상되면서 약 9만 세대에 정전 피해가 발생했다. 폭염기 전력수요 급증 시점이었다면, 훨씬 더 큰 재난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2. 기후 재난, 송전 병목, 수요 집중의 트리플 리스크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기후 재난으로 전력망과 발전 설비가 직접 타격을 받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 역시 유사한 병목과 위기 구조 속에 놓여 있다.
[해외 사례] 멈춰선 전력 시스템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마이클 웨버 교수는 “전력망은 과거의 기후 조건을 기준으로 설계됐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기후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으며,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 역시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확대, 냉방 수요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전력망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사례] 한계에 다가선 전력 인프라
한국 역시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 맞물리며 전력 시스템 전반이 복합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수도권에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반면, 송전망은 지역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어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가 전력 인프라에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를 가하면서, 이러한 변화는 중앙 집중형 전력 시스템에서 벗어나, 분산형·회복탄력형 전력망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시사한다.
3. 제도와 사회적 수용성의 병목: 기술 수요와 인프라 현실의 괴리
AI 인프라 확보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며, 한국에서도 수도권 중심의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기반 송전망, 입지 규제, 제도적 제한, 주민 수용성 부족 등 복합적인 한계로 인해 기술 수요와 인프라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AI 연구소와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수요가 몰리는 수도권은 전력 공급 제약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전기는 있는데, 보내는 길이 없다”는 구조적 문제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이중 불균형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지역 간 수요·공급 미스매치, 송전망 편중 구조와 맞물리며 전력 계통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확대되고 있다.
4. 전략적 대응 및 제언 : 생존형 전력망 재설계, 지금이 적기
CESS 2025에서 제시된 통찰처럼, 지금 우리가 설계해야 할 것은 단순한 전력 수급이 아니라, 기후에 견디고 산업을 지탱하며 지역을 포용하는 전환형 인프라 체계다. 기후위기와 AI 산업의 급성장은 기후에 견디며 산업과 지역을 포용할 수 있는 전환형 인프라로의 재설계가 요구된다. 산불과 폭염, 수요 집중, 인프라 갈등은 기존 전력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복원력 있는 설계, 정의로운 분담, 전략적 입지, 신뢰 가능한 수요 예측이라는 새로운 원칙 위에 정책을 재정립할 시기다.
5. 결론 : 전력망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과 산업·지역의 구조적 에너지 전환
전력망은 이제 단순한 에너지 인프라를 넘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존 기반’이자 국가 전환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제안한 100조 원 규모의 ‘국민펀드’는 하나의 분기점을 제시한다. AI 등 첨단산업 육성, 재생에너지 중심의 미래전략산업 전환, 그리고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겨냥한 이 구상은, 지금의 위기를 구조적 전환의 기회로 삼겠다는 정책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투자만이 아니다. ‘기후적응형 전력망’,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인프라 전략’, 그리고 ‘지역과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정책 설계’가 함께 가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전력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곧 산업의 미래이자 시민의 삶, 그리고 국가 지속가능성의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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